얼마 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게 되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이다.
아직도 앞부분을 읽고 있는 중인데 주체할 수 없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읽으면서 의문이 드는 것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이 책은 도대체 장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아주 인간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역사적이면서 무슨 드라마처럼 코믹하기도 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게도 하는 미묘한 위치에 있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의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는 듯한 이 소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위인들이 이 책을,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그렇게 숭배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겠고, 많은 사람들에게 교양인이라고 알려진 유명인들이 이 책을 왜 권하는지도 이제 알겠다.
아마도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그런 책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주 천천히 읽으려고 한다. 재미있는 만화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야금야금 읽어가는 심리랄까.
중간중간 재밌는 부분들은 기억에 남겨둘 겸 정리를 중간중간 하면서 말이다.
1900년대 초에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진작 읽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면서… 이제라도 읽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100년 전 소설이라 그런지 낯선 단어들이 많다. 난생 처음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계속 찾아가며 읽는 중이다.
몇 가지 생뚱맞은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기록해보자면,
조종(弔鐘)같은 종소리가 이물에서 고물로 울려 퍼졌다.
광막한 바다에서는 무궁한 시정(詩情)이 흘러나왔다.
등인데 나로서는 처음 보는 단어들이다.
앞부분 이야기의 압권은 조르바와 두목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전개인데 대화자체도 그렇지만 조르바라는 인물이 아주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재밌고 의미있는 장면들이 너무 많지만 그 중에 특히 몇 장면을 음미할 겸 기록해둔다.
“어행하시오?” 그가 물었다. “어디로요? 하느님의 섭리만 믿고 가시오?”
“크레타로 가는 길입니다. 왜 묻습니까?”
“날 데려가시겠소?”
나는 주의깊게 그를 뜯어보았다. 음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 눈동자가 밝고 예리했다.
“왜요?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서요?”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왜요! 왜요!”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자, 까짓것, 날 요리사라고 치쇼. 난 수프를 만들 수 있어요. 당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수프, 생각도 못 해본 수프…”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공갈 비숫한 태도와 격렬한 말투가 우선 마음에 들었다. (중략)
그는 세상을 적잖게 돌아다닌, 이를테면 뱃사람 신밧드와 비슷한 유형인 것 같았다.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오?” 그가 스스럼없이 물으며 큰 머리통을 흔들었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딱 감고 해버리는 거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르바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이어 다음 대화도 아주 재밌는데 이야기 중에 뼈가 있다.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뭡니까?”
“광산에서 일했지요. 이래 봬도 꽤 괜찮은 광부랍니다. (중략) 일 잘하고 있었지요. 십장을 지냈는데 불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악마가 끼어들고 말았지요. 지난 토요일 밤에 공연히 한 번 그래 보고 싶어서 그날 시찰 나온 사장을 붙잡아 패줬는데……”
“아니 왜요? 그자가 영감님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릴렀나요?”
“내게 말이오? 전혀, 전혀요! 그날 처음 만난 걸요. 그 불쌍한 친구, 우리한테 담배를 나눠주기까지 했어요.”
“그런데요?”
“아, 당신은 입만 열면 질문이구먼! 그냥 지랄병이 도진 것 뿐이라니까 그러네. 젋은 양반,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이야기 아시겠지?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 배우겠다는 생각은 당신도 안 하시겠지?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
어떤가? 조르바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가? 다음 장면도 기대하시라.
“결혼했습니까?”
“나는 뭐 사내가 아닌 줄 아쇼?” 그는 역정을 내며 말했다.
“나도 사내라고! 즉, 눈깔이 멀었다는 말이지. 나보다 먼저 살고 간 사람들처럼 나도 개골창에 대가리를 처박고 떨어진 겁니다. 결혼했죠. 그러고는 쭉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가장이 되고 집을 짓고 새끼들을 까고. 그 골치덩이들을 말이오. 하지만 산투르 덕분에 이렇게…”
“근심 걱정을 잊으려고 산투르를 치셨던 게로군요?”
“이것 보쇼. 보아하니 당신은 악기 하나 못 만지는 모양이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있는 건 근심 걱정 뿐. 마누라가 그렇고, 새끼들이 그렇잖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이러다 우리는 어찌 될까? 이런 젠장. 이래선 안 돼요.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예요. 마누라가 한 마디로 될 것을 열 마디 잔소리로 늘어놓는다면 무슨 기분으로 산투르를 치겠소?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빽빽거리는데 산투르를 어떻게 치겠소? 산투르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르에만 쏟아야 해요. 알겠어요?”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랬동안 찾아다녓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참고로 산투르는 이란의 전통 악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