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귀차 당귀술 효능 부작용 유래

당귀차 또는 당귀주로 즐겨먹는 당귀의 효능과 부작용, 당귀 명칭의 유래, 채취 시기 등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당귀잎 사진
당귀잎

당귀의 종류

당귀는 참당귀(대한민국), 중국 당귀(당당귀), 일당귀(일본)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참당귀가 국내산 약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식용 및 약으로 쓰이는 당귀는 참당귀와 일당귀입니다. 특히, 일당귀는 재배가 쉬워 쌈 등으로 자주 나옵니다. 참당귀는 꽃이 보라색이며 일당귀와 당당귀는 흰색꽃이 핍니다. 당귀에는 데쿠르신,데쿠르시놀 알겔레이트 라는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이 성분은 참당귀 추출물의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당귀의 효능은 이 성분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효능

당귀는 관절통, 두통, 변비, 빈혈, 소화불량,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는데 특히 여성의 자궁과 순환계통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약재 가운데 당귀는 부인들의 중요한 약재로 쓰입니다. 빈혈이나 복통, 월경불순 또는 갱년기 장애 등에 효과가 좋아 여성들의 한약처방에 많이 쓰이는 것입니다. 당귀는 보혈을 하여주고 여성의 자궁을 건강하게 하고 몸의 물질대사 및 내분비를 원활하게 하는 등 순환계통에 좋습니다.

당귀 채취 시기

당귀뿌리는 10월말 경에 잎이 누렇게 변했을 때 수확을 합니다. 야생당귀를 약초로 쓸 떄에는 봄과 가을에 꽃이 피기전에 뿌리를 캐어 그늘에 말려서 사용합니다. 

당귀주 담그는 방법

당귀를 약주를 담그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의 숙성기간이 필요합니다. 먼저 담금용 소주 2리터에 당귀 뿌리를 200g 내외로 넣고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서 숙성시킵니다. 3개월이 지난 후부터 하루에 1잔에서 2잔 정도 마시면 약주로 좋다고 합니다.

3개월의 숙성이 아닌 2~3일 숙성한 당귀소주로 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당귀와 잎을 썰어 꿀에 버무린 후에 소주를 부어서 2일에서 3일 정도 두었다가 먹으면 특유의 향과 꿀이 어우러져 음식과 곁들여먹기 좋은 당귀소주가 됩니다.

당귀차 만드는 법

당귀차는 당귀의 뿌리를 이용하여 만듭니다. 당귀 뿌리 10g을 물 1L에 놓고 달여서 먹으면 됩니다. 

부작용

당귀는 장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평소 설사나 묽은 변을 보는 사람은 당귀를 장기간 복용하거나 많은 양을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여성 임산부의 경우에도 자궁 수축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당귀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당귀를 채취할 때 종종 개당귀를 참당귀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개당귀는 독초로 분류되는 식물이므로 섣불리 참당귀로 오인하지 말고 잘 확인해보고 섭취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당귀 씨앗 사진
당귀 씨앗

당귀의 유래

당귀의 명칭에 대한 유래는 잘 알려져 있는데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 한다는 의미가 있어 중국에서도 예부터 남편이 싸움터에 나가면 당귀를 품 속에 지니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옛 중국 탕주(지금의 감숙성)의 탕창시에는 백룡강의 물줄기가 끼고 돌아 번창하였고 남쪽으로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가 있었다. 그곳에는 원시림이 뺵빽이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산이 높아 ‘큰산’이라고 불리었는데 각종 식물과 약초가 산재하였으며 맹수와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인적이 드믄 곳이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담력에 대하여 이야기 했는데 저마다 자신의 담력이 크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젋은이들은 담력이 없는 것을 대단히 치욕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봐 그러지들 말고 실제로 누가 담력이 가장 센지 내기를 해보세.” 

“그래 그게 좋겠군.”

젊은이들은 담력이 누가 센지 겨뤄보기로 하였다.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하자. ‘큰산’에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3년 뒤에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제일 담력이 센 사람이 되는거야.”

“좋아, 그렇게 하기로 하자.”

젊은이들은 이렇게 담력이 누가 더 센지 겨루는 방법을 정했지만 그 중에 누구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침묵만 지키고 있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좋아, 내가 가겠어.”

젋은이들이 자신있게 소리치는 곳을 보니 나선 이는 ‘왕용’이라는 젊은이였다. 그는 온순하였으며 결혼한 지 불과 1년 밖에 안되었고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친구들이 그를 말렸다.

“왕용,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

“왕용은 안돼.”

“왕용! 집어치워. 너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데 어떻게 오랜시간 집을 비운단 말이냐!”

그러나 왕용은 자신의 의지를 꺽지 않았다.

“사나이의 한 마디는 다시 거둘 수 없어. 남아일언은 중천금이거늘.”

왕용은 집으로 돌아가 이같은 자신의 결심을 어머니와 아내에게 알렸다. 연로한 어머니와 아내는 그를 뜯어 말렸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떠날 채비를 하고 아내와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를 하였다.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해주세요. 만일 3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더 이상 저를 기다리지 마세요. 그리고 여보, 당신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좋은 곳으로 재혼을 하도록 하시오.”

아내와 어머니는 한숨만 쉴 뿐이었다.

시간을 흘러 3년이 금새 지나갔다. 그러나 왕용의 소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내는 슬픈 나날을 보내다가 병을 얻게 되었다. 정신적 불안감이 극에 달했고 기가 허해져 부인병으로 월경이 끊겼다. 3년이 지나고 또 6개월이 더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불러놓고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얘야, 네 남편이 산 속으로 들어간 지 3년 반이 지났구나, 아무런 소식도 없고, 맹수와 독사들에게 변이나 당하지는 않았는지, 생사라도 알 수가 있어야지……”

즉, 며느리에게 이제 그만 왕용을 포기하고 재혼을 하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마음을 떠 본 것이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그가 돌아오리라 여전히 믿고 있었기에 재혼을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에 천만다행으로 며느리는 몸이 점차 회복되었는데 재차 재혼을 권유하는 시어머니의 뜻을 결국에는 거절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재혼하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왕용의 부인이 재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용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대문을 열고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러나 왕용이 본 것은 방 한 구석에 초라하게 앉아계시는 10년은 더 늙어 버린 것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제 처는 어디 있나요?”

“얘야, 네가 떠난 후 네 처는 병이 들었고 지금을 재가를 했단다.”

왕용은 아내가 재가를 하였다는 말에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 왕용은 친구를 통하여 아내에게 자기가 돌아왔다는 소식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은 아내는 편지를 읽고 매우 놀랐고 자신이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된 것을 자책하였다. 

어느 날 왕용의 어머니의 주선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왕용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산 속에서 당신만을 그리워했소!”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며칠 후 왕용의 아내는 병의 증세가 다시 도졌다. 의사가 진맥을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이 소식은 왕용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왕용은 산 속에서 가져온 봇짐에서 약초 하나를 꺼내 친구 편으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전처에게 보냈다. 

왕용의 아내가 재혼한 남자는 성격이 바르고 강직하며 이해심이 많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그동안의 사정을 왕용의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왕용 부부가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했었다는 사실과 왕용의 아내가 3년반의 시간을 재혼하지 않고 병을 이겨내며 버텨낸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고민을 하던 그는 아내를 왕용에게 다시 돌려보낼 것을 결심하여 왕용에게 다시 돌아가도록 허락하였다. 부인은 왕용이 보내준 약을 달여 먹고 3, 4일 뒤 몸이 다 완쾌되었다. 부인이 완쾌되길 기다린 왕용은 오색으로 장식한 말을 타고 나팔을 불며 자신의 처를 다시 집으로 맞이해 왔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탕주에 전해져 당연히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과 남편이 당연히 돌아온다는 뜻인 당귀를 그 약초의 이름으로 쓰게 되었다.